서울 광화문 새문안길 흥국생명 건물 옆에 서 있는 대형 조각품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왼쪽 사진)'. 키 22m, 몸무게 50t의 이 구조물은 미국의 설치미술가 조너선 보로프스키(66)의 작품이다. 2002년 세워진 뒤 이 일대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멈춘 상태의 일반 조각품과 달리 천천히 팔을 움직여 1분에 한 번씩 망치질하는 동작을 통해 현대인에게 노동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다. 미국의 시애틀·댈러스, 독일 프랑크푸르트, 스위스 바젤 등 세계 일곱 군데에 같은 이름의 조각품이 설치돼 있으며, 서울 작품의 키가 가장 크다. 

이 거인이 한 걸음(4.8m) 도로 쪽으로 걸어 나온다. 시민들과 더욱 가까이 만나기 위해서다. '거인'이 한 걸음을 떼는 데는 대략 3억원이 들어간다. 

서울시와 흥국생명은 24일 '망치질하는 사람'의 이전 설치 계획을 확정하고, 다음달 공사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망치질하는 사람'의 이전으로 생긴 빈 자리에는 물결을 형상화한 독특한 형태의 벤치가 있는 거리공원이 들어선다. 건물 앞 버스정류장은 기하학적 형태의 디자인으로 탈바꿈한다. 공원은 네덜란드의 건축사무소 메카누, 정류장은 건축가 하태석씨가 디자인했다. 이르면 5월 말이면 완공돼 도시 디자인의 또 하나의 모범 사례가 될 전망이다. 

이번 사업은 도시를 미술관처럼 꾸미겠다는 서울시의 '도시 갤러리 프로젝트'에 흥국생명이 흔쾌히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이뤄졌다. 총사업비는 8억~10억원으로 예상되며, 흥국생명이 거의 대부분 부담한다. 

서울시와 흥국생명은 '망치질하는 사람'이 앞으로 나오면 서울시민들이 더욱 쉽게 감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현재는 조각품이 건물에 바짝 붙어 있어 광화문 네거리 쪽에선 잘 보이지만 서대문 네거리 쪽에선 잘 보이지 않는다. 

흥국생명 허정민 팀장은 "프랑크푸르트에선 시야가 확 트인 광장에 '망치질하는 사람'이 서 있어 누구나 잘 볼 수 있다"며 "2002년 국내 설치 당시에도 현재 위치보다 조금 앞에 설치하려고 했지만 건축허가 규제 때문에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고 설명했다. 

5m도 안 되는 거리를 옮기는 데 3억원이 드는 것은 구조물이 워낙 크고 장치가 복잡하기 때문. 흥국생명은 거인을 대형 크레인으로 들어올린 뒤 발 아래에 설치된 팔 구동장치를 옮겨 달 계획. 구동장치는 체인에서 쇠줄(와이어)로 바꿔 안정성을 높이기로 했다. 

흥국생명 허 팀장은 "'망치질하는 사람'의 구체적인 제작비는 밝힐 수 없다"며 "지금 만일 같은 작품을 설치한다면 30억~40억원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거리공원은 시민들이 편하게 앉아 쉬어가며 '망치질하는 사람'을 감상할 수 있도록 조성된다. 밤이 되면 불빛이 비치는 가운데 물안개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모습이 시민들에게 좋은 구경거리를 제공할 것으로 서울시와 흥국생명은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