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로 본 사대문(四大門)-

서울이 조선의 도읍지로 정해진 것은 태조 3년인 1394년이었다. 이때부터 경복궁을 착공하면서 동서남북에 4대문을 내고 이를 연결하는 내성(內城)을 축조하기 시작, 태조 7년에 1차 완성을 본다. 이렇게 해서 도성의 기본적인 모양새가 잡힌다.

흔히 동대문이라 칭하는 문의 이름은 흥인지문(興仁之門)이다. 서대문은 본래 이 흥인지문에서 광화문을 통과하는 일직선상에 있었으나, 그 문밖의 경사가 심해 통행에 지장이 많다 해서 세종 연간에 약간 남쪽으로 옮겨서 문을 새로 냈다. 

그래서 오늘날 ‘새문안’이니 ‘신문로’니 하는 지명의 흔적을 남겼다. 그나마 일제에 의해 헐려 없어졌는데, 그 이름은 돈의문(敦義門)이었다. 현판까지 잘 보존돼 국보 1호로 지정돼 있던 남대문의 본이름은 숭례문(崇禮門)이다. 

북문은 현재 삼청동 터널 위쪽에 복원해 놓은 숙정문(肅靖門)이다. 그런데 이 숙정문은 본래 방위에 맞춰 문을 내기는 했지만 문의 구실을 하지는 않았다. 워낙 그쪽을 지나서는 더 나아갈 길이 없었던 데다가, 숙종조 이후에는 풍수지리설에 북문을 이쪽으로 열어 놓게 되면 음기(淫氣)가 침범, 서울 부녀자들의 풍기가 문란해진다 여겼기 때문이다. 

대신, 숙종조에 들어 서북쪽으로 약간 비켜 지금의 상명대학교 앞쪽에 홍지문(弘智門)을 내고 이후로 그쪽을 통해 다니게 되는데 이 홍지문이 사실상의 북문이었다.

정리해 보면, 동쪽으로 낸 문만은 동쪽의 허함을 보충해주기 위해 풍수지리설에 따라 글 수를 넉 자로 했지만, 동서남북 사방의 대문이 각각 흥인(興仁), 돈의(敦義). 숭례(崇禮), 홍지(弘智)라는 숭고한 의미가 담긴 말들로써 그 이름을 삼고 있다. 

이것을 다시 들여다보면 유교사상의 핵심 개념인 인·의·예·지와 정확히 대응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인간의 참다운 본성(本性), 그 최고의 가치들을 사방의 각 대문이 하나씩 현양하고 있는 것이다.

도성(都城) 안 평안을 위해

하지만 한양에 정도(定都)한 이후로 도성에는 왕자의 난과 화재가 연이었다. 서울 남쪽에 있는 불산에 해당하는 관악산 때문이었다고 여겼다.

관악산은 생긴 형상이 마치 관(冠)처럼 뾰족한 아름다운 바위산이라 해 그렇게 이름이 붙여져 왔으나 날카로운 자태로 인해, 예로부터 쳐다보기도 꺼려지는 산으로 간주돼 왔다. 풍수로 보아, 삼막사가 자리 잡은 바로 옆의 삼성산 또한 같은 취급을 당했다.

그래서 풍수설에 따라 불의 산인 관악산과 삼성산의 불기를 끊는다는 비보책(裨補策)으로, 서울 남대문 바로 앞 지금의 서울역 광장 부근에 남지(南池)라는 연못을 인공적으로 조성했다. 연못뿐만이 아니다. 남대문의 현판에 숭례문(崇禮門)이란 글씨도 결국 세로로 쓰여 지게 됐다.

편액(扁額)의 글씨는 가로로 쓰는 것이 관례이다. 숭례문이란 현액을 세로로 쓴 것은 관악산과 삼성산의 화기가 도성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다는 의미에서였다. 

한학에서는 모든 글자를 5행으로 분류하면서 목, 화, 토, 금, 수 가운데 하나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고 여긴다. 

숭(崇)은 높인다는 뜻이고 예(禮)란 글자를 오행(五行)으로 따져보면, 이는 화(火)에 속한다. 화를 오방(五方)으로 따지면 남(南)에 해당한다. 따라서 남쪽에 불을 지른다는 뜻이 되니, 이는 맞불 작전인 셈이다.

모양으로 보아, 숭례(崇禮)라는 글자를 세로로 써야 불이 더 잘 타오를 수 있다. 그래서 활활 타오르는 숭례문의 화기로 불산에서 옮겨오는 불을 막을 수 있다고 여겼다.

이와 함께 현재 광화문 복원공사로 치워졌지만 경복궁 보호를 위해 광화문 앞에 세워졌던 해태상 역시 관악산 화기를 막는 역할을 위한 것이었다. 해태는 물 기운을 몰아온다는 바닷속 상상의 동물이다. 

최적의 주거환경 염원

정리해 보면, 숭례문이라는 이름과 그 현판에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의미들이 담겨 있다.

조선은 인의예지의 이념 위에 세워진 국가이고, 숭례문은 그 중 ‘예’를 상징한다.관악산의 화기를 누르기 위해 숭(崇)과 례(禮)라는 모두 한학에서 불에 해당하는 글자들을 남쪽에 두어, 관악산의 화기에 맞불을 놓아 국가적으로 좋지 않은 일을 막는다.

현판이 세로로 쓰여진 까닭은, 숭과 례라고 하는 불을 상징하는 글자들이 더욱 더 활활 잘 타오르도록 해 위의 목적을 더 잘 달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 풍수지리학자는 “비보(裨補)는 풍수와 더불어 자연과 사람이 이상적인 만남과 관계 맺기를 추구한 우리의 전통사상이다. 옛 선조들은 풍수적 자연가치에 비보적 문화생태 및 마음가치를 보완해 최적의 주거환경을 이루고자했던 것이다.”라고 말해 잿더미가 된 숭례문의 숭고한 가치를 새삼 가늠케 하고 있다